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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원전 유치, '행정 편의'가 '국가 안보'를 이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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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작성일 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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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부지 활용' 경제성 논리에 가려진 '집중화 리스크'

사보타주 시 대안 부재... 15조 원 국책 사업, '안전한 분산'이 정답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15조 원이 투입되는 국가적 대사이자 대한민국 에너지 백년대계를 결정할 이번 선택을 앞두고, 정부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경제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특정 지역 대세론이 흘러나온다. 기존 원전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숟가락'을 얹는 것이 건설 비용을 아끼고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소위 '경제적 효율'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뒤에는 공무원들이 관리하기 편하고, 송전망 확충 부담을 덜고 싶어 하는 '행정 편의주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과연 그 몇 푼의 건설비 절감이 국가 에너지 안보라는 절대적 가치보다 앞설 수 있는가. 이미 울산과 부산으로 이어지는 동남권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초고밀도 원전 밀집 지역이다. 효율성 면에서는 합격점일지 모르나, 안보 측면에서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가동 원전 26기 중 15기가 동남권에 집중되어 있다. 원전은 국가 전체 발전량의 약 30%를 담당하는 기저 부하다. 만약 이 밀집 지역의 핵심 변전소나 송전로에 테러, 사이버 사보타주, 혹은 초대형 자연재해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단 한 번의 타격으로 국가 전력 공급의 30%가 도미노처럼 가동 중단되는 ‘광역 블랙아웃’의 공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특정 반경 내에 10기 이상의 노형이 집중될 경우, 단일 계통 사고가 국가 전력망 전체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정부는 결코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최근 현대전의 양상이 국가 기간 시설, 특히 발전소를 제1타격 목표로 삼는 상황에서 '한 바구니에 담긴 계란'을 늘리는 선택은 전략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신규 부지의 송전망 건설 리스크를 우려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영덕은 이미 '동해안-신가평 초고압 직류송전(HVDC)' 선로와의 연계가 용이한 전략적 길목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 군민 86.18%가 찬성표를 던진 압도적 수용성은 영덕만의 독보적인 자산이다. 과거 '제2의 밀양 사태'와 같은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9할에 육박하는 주민 찬성률을 확보한 영덕에서 그러한 물리적 충돌이 재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이러한 민심은 향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천문학적 규모의 '사회적 갈등 비용'을 제로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경제적 보증수표다.


"빨리 지을 수 있다"는 시급성 논리 또한 옹색하다. 영덕은 이미 10년 전 환경영향평가와 지질 조사의 기초 데이터가 확보된 곳이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타 후보지와 달리, 영덕은 축적된 데이터와 압도적 민심을 모두 갖춘 준비된 패스트트랙(Fast-track) 부지다.


산자부와 선정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훗날 원전 집중화로 인한 전력망 마비 사태가 벌어졌을 때, "그때는 건설비 몇 푼 아끼는 게 우선이었다"는 변명이 통할 것인가. 부지 선정은 목소리 큰 쪽의 손을 들어주는 '정치적 배분'도, 공무원이 일하기 편한 곳을 찍는 '행정 편의'의 장도 아니다.


이제 정부는 '안전한 집중'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직 데이터가 가리키는 최적지, 그리고 안보가 요구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택해야 한다. 9년 전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선 영덕의 절실함은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안보를 포기한 효율은 언제든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영덕의 빈터가 웅변하고 있다.

이대경 기자(ldk_19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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